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갖고 싶었던 주방용품이 찬장 속에 남았습니다, 초점주의 착각의 심리

by 차니프라임 2026. 8. 30.

저는 주방용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정말 편리해 보이면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방을 정리하다 보니 그렇게 갖고 싶어서 샀던 것 중 생각보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살 때는 분명 필요해 보였는데 왜 막상 사고 나면 달라지는 걸까요? 단순히 충동구매였다고 넘기기보다, 한 가지에 집중할수록 그것이 내 삶에 미칠 영향을 크게 생각하게 되는 ‘초점주의 착각(Focusing Illusion)’이라는 심리학 개념을 통해 제 소비 습관을 돌아봤습니다.

 

초첨주의 착각의 영향으로 무수히 많은 주방용품들

1. 찬장을 열었는데 갖고 싶었던 물건들이 보였습니다

저는 주방용품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제품을 보다 보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건 있으면 정말 잘 쓰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다 결국 구입합니다.

물건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대가 됩니다. 실제로 받아보면 마음에 들고 처음에는 몇 번 사용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예상과 달라지는 물건들이 생깁니다.

어느 순간부터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물건들이 모두 쓸모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능도 괜찮고 필요할 때 사용하면 편리합니다. 다만 구입하기 전에 제가 예상했던 것만큼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방을 정리하다 이런 물건들을 발견하면 예전에는 그냥 ‘괜히 샀나?’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물건을 사기 전에도 제 생활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방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었고, 평소 어떤 요리를 자주 하는지도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고 싶은 제품을 보고 있을 때는 이런 것보다 그 제품의 장점이 훨씬 크게 보였을까요?

그리고 왜 그 순간에는 그 물건이 앞으로 제 주방에서 자주 사용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을까요?

처음에는 단순히 ‘사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관련 내용을 찾아보면서 ‘초점주의 착각(Focusing Illusion)’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습니다.

2. 생각의 중심에 들어온 것은 실제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초점주의 착각은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요소에 집중할 때 그것이 행복이나 만족,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Daniel Kahneman과 동료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할 때 특정 조건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 조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개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와 미국 중서부 지역의 삶의 만족도를 비교한 연구입니다.

두 지역은 기후에서 눈에 띄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두 지역의 생활을 비교하게 하면 날씨가 삶의 만족도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두 지역 학생들이 자신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보고한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의 만족도를 예상할 때는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날씨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에 생각이 집중되면 그 조건이 실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하루는 날씨 하나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일을 하고, 식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집안일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생깁니다. 우리가 하루 동안 느끼는 만족감에는 수많은 요소가 동시에 작용합니다.

Kahneman과 동료들은 이후 소득과 행복을 다룬 연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소득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하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실제 일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감정은 소득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읽다가 문득 제가 주방용품을 고르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이 연구들이 주방용품 구매를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순간 그것의 영향력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관점은 제가 물건을 살 때와 사고 난 뒤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3. 물건을 보고 있을 때는 그 물건이 생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사고 싶은 주방용품을 보고 있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그 제품에 집중하게 됩니다.

얼마나 편리한지, 디자인은 어떤지, 지금 가지고 있는 제품보다 무엇이 좋은지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까지 상상하게 됩니다.

이걸 사용하면 요리가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습니다.

주방이 더 깔끔해질 것 같습니다.

번거로웠던 일이 간단해질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상상하면 사고 싶은 이유는 점점 많아집니다.

그런데 실제로 물건이 집에 도착한 뒤에는 제품을 바라보던 화면 밖의 생활이 다시 시작됩니다.

물건을 꺼내야 하고, 사용한 뒤에는 씻어야 합니다. 다시 보관할 자리도 필요합니다. 기존에 쓰던 도구가 더 익숙할 수도 있고, 애초에 그 제품이 필요한 요리를 생각보다 자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구매 전에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제품의 장점만큼 선명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차이를 깨닫고 나니 잘 사용하지 않는 주방용품을 보는 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왜 필요 없는 걸 샀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른 질문이 먼저 떠오릅니다.

‘나는 왜 이걸 이렇게 자주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돌이켜보면 저는 물건 하나만 산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자주 사용하는 미래까지 함께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는 제품이 중심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 싶은 물건을 보고 있을 때는 그 물건이 내 생활의 중심에 있지만, 사고 난 뒤에는 다시 수많은 일상 중 하나가 됩니다.

저에게는 이 차이가 꽤 크게 다가왔습니다.

4. ‘좋은 물건인가?’보다 ‘내가 정말 자주 쓸까?’

주방용품을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보면 여전히 관심이 가고 정말 마음에 들면 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주방용품을 덜 사야겠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물건을 보는 기준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제품 자체를 중심으로 질문했습니다.

‘이 제품은 무엇이 좋은가?’

‘지금 쓰는 것보다 편리한가?’

‘사람들의 평가는 어떤가?’

물론 지금도 이런 것들을 봅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봅니다.

‘나는 이걸 실제로 언제 사용할까?’

이 질문을 하면 제품만 보던 시선이 제 생활로 돌아옵니다.

일주일에 한 번도 하지 않는 요리를 위한 도구라면 아무리 편리해도 사용하는 횟수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세척이나 정리가 번거로운 제품이라면 처음 몇 번은 신기해서 사용하더라도 익숙한 도구로 돌아갈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 있다면 새 제품의 기능이 얼마나 뛰어난가보다 기존 제품 대신 이것을 꺼낼 이유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품이 좋은지 판단하는 것과 나에게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성능이 좋은 제품도 제 생활방식과 맞지 않으면 찬장 안에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특별할 것 없는 주방도구라도 제 생활과 잘 맞으면 매일 손이 갑니다.

결국 제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결정하는 것은 제품의 장점만이 아니라 제 생활과의 궁합이었습니다.

5. 초점에서 잠시 벗어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옵니다

초점주의 착각을 알게 됐다고 해서 갖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분야의 제품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즐거울 수 있고, 실용성만이 아니라 디자인이 좋아서 물건을 사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소비를 효율성만으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방용품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를 모두 초점주의 착각으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생활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막상 사용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불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물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초점주의 착각에 관한 연구가 제 주방용품 구매 행동을 직접 검증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개념을 제 소비의 ‘원인’이라기보다 제 행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 무조건 참기보다 잠시 초점을 넓혀보는 것입니다.

제품을 사용하는 멋진 순간만 떠올리지 않고 그 전과 후도 같이 생각해봅니다.

어디에 보관할까.

얼마나 자주 꺼낼까.

사용한 뒤 정리하는 과정까지 감수할 만큼 편리할까.

지금 있는 물건으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일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제품만 크게 보이던 화면에 제 실제 생활이 조금씩 다시 들어옵니다.

어떤 때는 그래도 사고 싶다는 결론이 납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보다 사용할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갖고 싶다는 마음과 필요하다는 판단이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방 찬장을 정리하다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발견하면 예전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그 물건들은 제가 무엇을 잘못 샀는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기 전에는 무엇을 크게 보고 무엇을 작게 보았는지도 보여줍니다.

제품을 살 때는 기능과 장점이 눈앞에 있습니다.

반면 실제로 사용하게 될 횟수, 보관의 번거로움, 기존 물건과의 중복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갖고 싶은 주방용품을 발견했을 때 ‘좋은 제품인가?’만 묻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보다 먼저 한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이 물건은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하루 안에 얼마나 자주 등장할까?’

이 질문 하나로 모든 소비가 합리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앞으로 마음에 드는 주방용품을 또 살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품을 보고 있는 순간의 기대를 실제 생활 전체라고 착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물건을 사기 전에는 그 제품 하나가 크게 보입니다.

사고 난 뒤에는 다시 평범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어쩌면 제가 찬장 속에 남겨둔 몇몇 주방용품은 필요 없는 물건이라기보다, 그 물건이 들어온 뒤의 생활을 실제보다 조금 크게 상상했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물건을 볼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갖고 싶은 마음’ 자체가 아닙니다.

눈앞에 있는 한 가지가 내 미래의 생활 전체처럼 커 보이는 순간입니다.


참고자료

Schkade, D. A., & Kahneman, D. (1998).
Does Living in California Make People Happy? A Focusing Illusion in Judgments of Life Satisfaction.
Psychological Science, 9(5), 340–346.

특정한 차이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 요소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판단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연구입니다.

Kahneman, D., Krueger, A. B., Schkade, D., Schwarz, N., & Stone, A. A. (2006).
Would You Be Happier If You Were Richer? A Focusing Illusion.
Science, 312(5782), 1908–1910.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통해 특정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행복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살펴본 연구입니다.

Ubel, P. A., Loewenstein, G., & Jepson, C. (2005).
Disability and Sunshine: Can Hedonic Predictions Be Improved by Drawing Attention to Focusing Illusions or Emotional Adaptation?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Applied, 11(2), 111–123.

초점주의와 적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미래의 삶의 질과 감정 상태를 예상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연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