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프로그램은 어느 순간 사용법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익숙해집니다. 그런데 새로운 업데이트나 더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분명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바꾸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업무에서는 늘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왜 더 나은 방법을 앞에 두고도 기존 방식을 놓기가 싫었던 걸까요? 단순히 변화를 싫어해서라고 생각했던 경험을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1. 더 효율적인데 왜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
회사에서 매일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익숙해집니다.
처음 사용할 때는 메뉴 하나를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어떤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작업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이런 과정이 사라집니다.
일을 하면서 다음에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일일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작업이라면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업무를 하면서 이렇게 익숙해진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업데이트나 기존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살펴보면 분명 좋아진 점이 있었습니다. 이전보다 편리해진 기능도 있고, 잘 활용하면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바꾸려고 하면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쓰고 있는데 굳이 바꿔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기존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바꾸면 익숙했던 메뉴의 위치부터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생각하지 않고 처리했던 일도 처음에는 하나씩 찾아가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프로그램이 업무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데, 당장 오늘의 업무만 생각하면 오히려 기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무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효율성인데, 왜 더 효율적일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익숙한 것이 편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제가 비교하고 있던 것은 두 프로그램의 기능만이 아니었습니다.
한쪽에는 새로운 기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제가 오랫동안 쌓아온 익숙함이 있었습니다.
2.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이 경험을 떠올리며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습니다.
1988년 William Samuelson과 Richard Zeckhauser는 사람들이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었을 때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을 연구했습니다.
연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같은 선택지라도 그중 하나가 현재 상태, 즉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선택으로 제시되면 사람들이 그것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만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바꾸면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것도 내 결정이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바꾼 결과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기존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하면 특별한 선택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입니다.
이 부분에서 제 경험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새 프로그램의 장점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에 익숙해지면 업무가 빨라질 수도 있고, 반복적인 작업을 조금 더 간단하게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기존 프로그램의 장점은 이미 제 손에 있었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를 교체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익숙함’을 잠시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새 프로그램의 장점은 앞으로 얻게 될 것이었지만, 기존 프로그램의 익숙함은 지금 당장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가 왜 기존 방식을 계속 사용하고 싶어 했는지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 익숙함과 효율성은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기존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하는 행동을 무조건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프로그램을 바꾸는 데는 실제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용법을 배우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익숙해지는 동안에는 업무 속도가 오히려 느려질 수도 있습니다.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실수할 가능성도 있고, 기존에 하던 작업과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정보시스템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 사용자가 느끼는 전환 비용과 기존 시스템에 대한 습관이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고 나니 기존 프로그램을 선호했던 제 행동을 단순히 ‘변화를 싫어해서’라고 설명하는 것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숙함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정말 기존 프로그램이 더 효율적이어서 사용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익숙하다는 사실을 효율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걸까?
기존 프로그램에서는 익숙한 기능 하나를 몇 초 만에 처리합니다.
반면 새로운 프로그램에서는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메뉴를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역시 예전 것이 더 편하네.’
하지만 이 비교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한쪽은 오랫동안 사용해서 충분히 숙련된 상태이고, 다른 한쪽은 이제 막 사용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한 프로그램에서의 제 작업 속도와 처음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의 작업 속도를 그대로 비교한다면 기존 프로그램이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두 프로그램 모두 똑같이 익숙하다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저에게는 이 질문이 꽤 중요했습니다.
익숙함을 잠시 제외하고도 기존 방식이 더 편리하다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방식에 충분히 익숙해졌을 때 업무 시간이 줄고 불필요한 과정이 사라진다면 처음 느끼는 불편함만으로 새 프로그램을 판단하는 것도 섣부를 수 있습니다.
결국 익숙하다는 것과 효율적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4. 싫었던 것은 변화가 아니라 다시 초보자가 되는 과정이었을까
새로운 프로그램을 바꾸기 싫어했던 제 마음을 돌아보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싫어했던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에 익숙해질 때까지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존 프로그램에서는 저는 이미 능숙한 사용자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고, 작업 순서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하나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주 간단한 기능도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하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않고 하던 작업을 다시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능숙하게 일하던 사람이 잠시 초보자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특히 회사에서는 이 과정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만 배우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해야 할 업무는 그대로 있는데 그 일을 처리하는 도구만 낯설어집니다.
그래서 기존 방식을 계속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는 단순한 고집뿐 아니라 지금까지 쌓은 숙련도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을 하고 나니 현상 유지 편향을 바라보는 제 시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쉽게 ‘새로운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키고 싶은 것은 오래된 방식 자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방식 안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의 능숙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언제나 더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업무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업데이트가 모든 사람에게 더 편리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꿀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내가 무엇 때문에 현재 상태를 선택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방식이 실제로 더 적합해서인지,
전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커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익숙한 것을 내려놓기 싫어서인지 말입니다.
이 세 가지는 겉으로는 모두 ‘그냥 지금 것을 쓰겠다’는 같은 선택으로 나타나지만 그 안의 이유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바꾸기 싫었던 경험은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그저 익숙한 것이 편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기 귀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상 유지 편향을 알고 나서 당시의 선택을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비교하고 있던 것은 프로그램의 기능만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가져올 가능성과 기존 프로그램에서 이미 쌓아놓은 제 경험을 함께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익숙함 역시 업무에서 중요한 자산입니다.
다만 익숙함이 너무 편안해지면 ‘지금 방식이 좋다’와 ‘지금 방식에 내가 익숙하다’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더 나은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접했을 때는 ‘새로운 것이 더 좋은가?’만 따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지금 것도 잘 되는데 왜 바꿔야 하지?’라는 생각만으로 결론을 내리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둘 다 똑같이 익숙하다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그 질문에 답해보면 내가 현재의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가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 좋은 선택인지 알려면 새로운 것의 장점만큼이나 내가 기존 방식에서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바꾸기 어려워했던 것은 오래된 프로그램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가장 내려놓기 어려웠던 것은 그 프로그램 안에서 이미 능숙하게 일하고 있던 ‘익숙한 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자료
Samuelson, W., & Zeckhauser, R. (1988).
Status Quo Bias in Decision Making. Journal of Risk and Uncertainty, 1, 7–59.
Kim, H. W., & Kankanhalli, A. (2009).
Investigating User Resistance to Information Systems Implementation: A Status Quo Bias Perspective. MIS Quarterly, 33(3), 567–582.
Polites, G. L., & Karahanna, E. (2012).
Shackled to the Status Quo: The Inhibiting Effects of Incumbent System Habit, Switching Costs, and Inertia on New System Acceptance. MIS Quarterly, 36(1),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