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지를 정할 때 몰디브와 이탈리아를 놓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결국 몰디브를 선택했고 아름다운 바다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가끔 ‘그때 이탈리아에 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더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선택 지지 편향(Choice-Supportive Bias)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선택하지 않은 길이 계속 마음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신혼여행 경험을 출발점으로 선택 이후의 기억과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심리를 살펴보았습니다.

1. 몰디브가 좋았는데도 이탈리아가 생각납니다
신혼여행을 준비할 때 여행지를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곳은 몰디브와 이탈리아였습니다.
두 곳은 단순히 어느 나라가 더 좋은지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여행 방식이 달랐습니다.
몰디브를 선택하면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편안하게 쉬는 휴양 중심의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에 가면 로마나 피렌체 같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오래된 건축물과 미술관을 보고, 거리와 음식을 경험하는 관광 중심의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휴양을 선택할 것인지 관광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신혼여행은 평범한 여행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피곤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쉬고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왕 멀리 떠나는 특별한 여행인데 여러 곳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희는 몰디브를 선택했습니다.
지금도 그 여행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다입니다. 사진으로 충분히 보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몰디브의 바다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바다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그곳의 분위기였습니다.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여행을 가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꼭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바쁠 때가 있는데, 몰디브에서는 그런 느낌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별히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바다를 바라보고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친절했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았던 시기였던 만큼 모든 일정이 끝난 뒤 그렇게 조용한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제 기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몰디브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여행지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탈리아 사진을 보거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이탈리아에 갔다면 어땠을까?’
로마의 오래된 거리를 걷고 피렌체의 미술관을 둘러보며 신혼여행을 보냈다면 그것도 꽤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몰디브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선택하지 않은 쪽도 아쉬울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그냥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러다 선택과 기억에 관한 심리학 자료를 찾아보면서 선택 지지 편향(Choice-Supportive Bias)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이 개념을 알고 나니 제 경험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2. 선택이 끝난 뒤 기억도 내 선택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선택 지지 편향은 자신이 과거에 선택했던 대상을 나중에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억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은 원래 자기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를 살펴보니 조금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Mather, Shafir, Johnson이 2000년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선택했던 대상의 특징을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연구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긍정적인 특성을 더 많이 귀속시키고, 선택하지 않은 대상에는 부정적인 특성을 더 많이 귀속시키는 선택 지지적인 기억 오류를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출처 감시(Source Monitoring)의 문제가 관련됩니다.
우리의 기억은 과거를 영상처럼 그대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정확하게 재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보를 어디에서 보았는지, 어떤 특징이 어느 대상에 해당했는지를 다시 떠올리는 과정에서도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행 상품 A와 B를 놓고 고민했다고 해보겠습니다. 두 상품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었는데 A를 선택했다면, 시간이 지난 뒤 긍정적인 특징을 실제보다 A와 더 많이 연결하고 부정적인 특징은 B에 속했던 것으로 잘못 기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단순히 선택이 끝난 뒤 “내가 잘 골랐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선택을 판단하는 데 사용했던 과거의 정보 자체를 기억하는 과정에서도 선택 지지적인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 신혼여행을 여기에 대입해 보면 몰디브의 장점을 지금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바다, 조용했던 분위기, 친절했던 사람들, 둘이 편안하게 보냈던 시간은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선택 지지 편향만으로 제 경험을 설명하려니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탈리아는 아직도 생각나는 걸까요?
선택 지지 편향대로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역시 몰디브를 선택하길 잘했어’라는 기억만 더 강해질 것 같지만 실제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여행지를 다시 머릿속에 올려놓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몰디브에는 기억이 있지만, 신혼여행으로서의 이탈리아에는 기억이 없습니다.
몰디브에는 아름다운 바다와 평화로웠던 시간뿐 아니라 며칠 동안 직접 여행하면서 겪은 현실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도 모든 순간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이탈리아에는 그런 현실이 없습니다.
그곳에 갔다면 하루 종일 걸어 피곤했을 수도 있고 이동하면서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가 생각보다 붐볐을 수도 있고 여행 일정 때문에 서로 의견이 달라지는 순간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정말 몰디브보다 더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었을지는 이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차이가 제가 이탈리아를 떠올리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제가 비교한 것은 몰디브와 이탈리아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찾아본 또 하나의 개념이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였습니다.
반사실적 사고는 실제로 일어난 현실과 다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구성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해보는 생각입니다.
그중 실제 결과보다 더 나은 대안을 상상하는 것을 상향 반사실적 사고(Upward 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후회와 관련되기도 하지만 단순히 없애야 할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결과와 다른 가능성을 비교함으로써 이후의 판단이나 행동에 활용할 정보를 얻는 기능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을 제 경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가 제 신혼여행 선택을 분석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선택 지지 편향과 반사실적 사고라는 두 개념을 통해 제 경험을 다시 바라보니, 제가 오랫동안 무엇을 비교하고 있었는지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저는 몰디브와 이탈리아를 비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쪽에 제가 직접 보고 느끼고 살아본 몰디브의 기억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그곳에 갔으면 이랬을 것이다’라고 머릿속에서 구성한 이탈리아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둘은 처음부터 같은 조건의 비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몰디브에는 현실의 마찰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제가 상상하는 이탈리아에는 로마의 거리와 피렌체의 미술관, 맛있는 음식 같은 장면은 쉽게 넣을 수 있지만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지친 오후나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던 일정까지 굳이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여행 외의 선택에서도 나타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선택하면 실제로 살아보면서 교통이나 주변 환경뿐 아니라 생각하지 못했던 생활의 불편까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포기한 집에는 실제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불편이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로나 직장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는 힘든 날도 보내고 예상과 달랐던 일도 겪습니다. 반면 가지 않은 길은 ‘그쪽으로 갔다면 더 잘 맞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여지가 계속 남습니다.
그렇다고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이 모두 착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다른 선택이 더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선택한 여행지는 현실의 기억으로 남지만, 선택하지 않은 여행지는 가능성으로 남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선택을 평가할 때 한쪽에는 실제 경험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들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가능성이 들어 있다는 차이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선택 지지 편향과 다른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도 아닙니다.
몰디브를 좋은 여행으로 기억하면서도 이탈리아라는 다른 가능성을 궁금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과 판단이 하나의 심리 법칙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몰디브와 이탈리아 중 어디를 선택할까?
여전히 쉽게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탈리아를 선택해 도시를 돌아다니는 신혼여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몰디브에서 보낸 시간을 다른 여행으로 바꾸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고 그곳은 평화로웠습니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결혼식을 준비하며 정신없이 지낸 뒤 둘만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탈리아가 생각날 때면 ‘그때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다른 선택이 계속 생각난다고 해서 당시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증거는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지나 내 선택이 더 좋아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증거도 아닐 것입니다.
기억도 완벽하지 않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 역시 실제 경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몰디브는 제가 직접 며칠을 보내며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모두 경험한 곳입니다. 반면 신혼여행으로서의 이탈리아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현실이 된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탈리아 사진을 보면 가끔 ‘신혼여행으로 갔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질문에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쪽은 제가 직접 살아본 기억이고, 다른 한쪽은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여러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지 않은 길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 길이 더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현실에 의해 수정된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자료
Mather, M., Shafir, E., & Johnson, M. K. (2000).
Misremembrance of Options Past: Source Monitoring and Choice. Psychological Science, 11(2), 132–138.
선택 이후 선택한 대상의 긍정적 특징과 선택하지 않은 대상의 부정적 특징을 더 많이 귀속하는 선택 지지적 기억과 출처 감시를 다룬 연구입니다.
Mather, M., & Johnson, M. K. (2000).
Choice-Supportive Source Monitoring: Do Our Decisions Seem Better to Us as We Age? Psychology and Aging, 15(4), 596–606.
선택 지지적 기억과 연령에 따른 차이를 살펴본 연구입니다.
Byrne, R. M. J. (2016).
Counterfactual Thought. Annual Review of Psychology, 67, 135–157.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대안을 상상하는 반사실적 사고와 판단·후회 등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