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수학 공부를 생각하면서 한때는 선행 진도를 많이 나갈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몇 학년 과정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와 비교했고, 조금이라도 더 앞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미 배운 내용인데도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조금만 달라지면 막히는 모습을 보면서 빠른 진도와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왜 비교할 때는 ‘얼마나 앞서 있는가’가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졌을까요? 심리학의 구별 편향(Distinction Bias)을 통해 제가 아이의 수학 공부를 바라보는 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어느 순간 수학 공부가 ‘얼마나 앞서 있느냐’의 문제가 됐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다른 집의 교육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수학은 비교하기가 참 쉬운 과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는 벌써 다음 학년 과정을 공부한다거나, 어느 학년 과정까지 끝냈다거나,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고등학교 수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아이의 진도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도 조금 더 빨리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처음에는 선행을 많이 해두면 당연히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배워야 할 내용이라면 미리 공부해 두는 것이 학교 수업을 따라갈 때도 도움이 되고, 시험을 준비할 때도 여유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선행은 결과가 눈에 잘 보였습니다.
현재 어느 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지, 어느 단원까지 끝냈는지, 문제집을 몇 권 풀었는지처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이의 수학 공부가 잘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진도를 먼저 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실제 공부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의문이 생겼습니다.
분명 전에 배운 단원인데 기본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익숙한 유형의 문제는 풀었지만 문제가 조금 다른 형태로 나오면 막히기도 했습니다.
앞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면 결국 다시 돌아와 확인해야 하는 부분도 생겼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질문을 바꿔보게 됐습니다.
‘얼마나 앞서 나갔을까?’가 아니라
‘배운 것을 정말 알고 있을까?’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진도는 앞으로 얼마나 이동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까지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선행학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하면서 빠르게 나갈 수 있는 아이라면 선행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미리 접한 내용이 학교 수업에서 다시 나왔을 때 이해가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선행 자체가 아니라 왜 당시의 저는 ‘얼마나 앞서 있는가’를 그렇게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그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심리학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구별 편향(Distinction Bias)입니다.
2. 두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 중요해집니다
구별 편향은 Christopher Hsee와 Jiao Zhang이 2004년 발표한 연구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핵심은 우리가 여러 선택지를 함께 비교할 때와 하나를 선택해 실제로 경험할 때 그 차이를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에서는 여러 대안을 함께 놓고 비교하는 상황을 공동 평가(Joint Evaluation), 하나의 대상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상황을 단독 평가(Single Evaluation)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노트북 두 대를 비교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쪽의 저장 용량이 조금 더 크고, 무게가 조금 더 가볍고, 배터리가 몇 시간 더 오래간다는 식으로 차이를 나란히 적어놓으면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비교하기 쉬워집니다.
이때 평소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작은 차이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낄 만족에도 그만큼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노트북을 하나 구입한 뒤에는 매일 다른 제품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중요한 것은 배터리 시간이 경쟁 제품보다 몇 퍼센트 긴지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동안 충분한지, 무게가 실제 생활에서 불편한지, 필요한 작업이 잘되는지 같은 경험입니다.
Hsee와 Zhang은 이처럼 공동 평가 상황에서 발견한 차이가 이후 개별적으로 경험할 때의 만족이나 행복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과대예측할 수 있는 현상을 구별 편향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개념을 읽으면서 저는 아이의 수학 선행을 떠올렸습니다.
‘한 학기 선행’과 ‘한 학년 선행’은 비교하기 쉽습니다.
누가 더 앞서 있는지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아이가 개념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그렇게 간단하게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것과 그 공식이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익숙한 유형을 푸는 것과 처음 보는 문제에 배운 개념을 적용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 차이를 확인하려면 아이에게 설명하게 해보기도 하고, 틀린 문제에서 어디서 생각이 잘못됐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전에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그 과정은 ‘몇 학년 선행’처럼 숫자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도는 비교하기 쉽지만, 이해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저는 교육적으로 더 중요한 것을 비교하고 있었다기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 쉬운 것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물론 구별 편향에 관한 연구가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선행교육을 직접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수학 선행 경쟁은 구별 편향 때문에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경험을 이 개념을 통해 다시 바라보니, 왜 당시에는 진도의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3. 눈에 잘 보이는 기준이 반드시 중요한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구별 편향을 찾아보면서 함께 흥미롭게 본 것이 Hsee가 1998년에 발표한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하나씩 따로 평가할 때와 여러 대상을 함께 비교할 때 가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잘 알려진 실험 중 하나가 아이스크림과 컵에 관한 것입니다.
한쪽에는 작은 컵에 넘칠 만큼 담긴 아이스크림이 있고, 다른 쪽에는 더 큰 컵에 더 많은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지만 컵이 가득 차지는 않았습니다.
두 아이스크림을 나란히 놓으면 어느 쪽의 양이 더 많은지 비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각각 따로 평가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확한 양을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컵에 가득 차 있는지처럼 바로 판단할 수 있는 단서가 가치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Hsee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어떤 속성은 혼자 있을 때 평가하기 어렵지만 비교 대상이 생기면 훨씬 평가하기 쉬워진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이 연구를 보면서 ‘평가하기 쉬운 것’과 ‘실제로 중요한 것’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수학 공부로 돌아가 보면 그렇습니다.
몇 학년 과정을 공부하는지는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시험 점수도 숫자로 나옵니다.
문제집을 몇 권 풀었는지도 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념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배운 내용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틀렸을 때 자신의 풀이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지는 숫자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점수나 진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둘 다 아이의 학습 상태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정보입니다.
제가 경계하게 된 것은 측정하기 쉽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처음에는 선행 진도를 일종의 학습 성과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진도가 앞으로 나가면 공부도 그만큼 쌓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니 학습은 그렇게 단순하게 누적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개념은 한 번 배우고 바로 이해하지만, 어떤 개념은 여러 번 틀리고 다시 돌아가면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잘 풀었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 흔들리기도 하고, 반대로 처음에는 어려워했던 개념을 나중에 다른 단원과 연결하면서 제대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수학 공부에서 ‘앞으로 얼마나 갔는가’만으로 현재 위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4. 비교하는 부모와 공부하는 아이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가 보였습니다.
부모가 교육 방법을 선택할 때와 아이가 실제로 공부할 때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부모는 선택하기 위해 비교합니다.
어느 학원이 진도가 빠른지, 어떤 교재를 사용하는지, 몇 학년 과정을 배우는지, 주변 아이들은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같은 정보를 봅니다.
비교하는 입장에서는 차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책상에 앉아 문제 하나를 풀 때는 다른 아이가 몇 학년 과정을 공부하는지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그 순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문제에 들어 있는 개념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풀이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 두 장면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기 좋은 학습의 모습과 아이가 실제로 공부하면서 필요한 것이 언제나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가지를 조금씩 구분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의 수학 공부를 볼 때 예전과 다른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다음 진도는 언제 나갈까?’보다 먼저,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에 빈틈은 없을까?’
선행을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현재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빈틈이 있다면 잠시 속도를 늦추고 다시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이후의 선행을 더 수월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변화는 선행의 속도를 늦췄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공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별 편향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자녀 교육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집을 고를 때 평수와 역까지의 거리를 비교합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는 연봉을 비교하고, 물건을 살 때는 사양과 기능을 나란히 놓습니다.
비교 자체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비교표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차이가 실제 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할 때 생길 수 있습니다.
집에서 살아보면 숫자로 표시되지 않았던 생활의 편리함이 중요해질 수 있고, 직장에서 일해보면 연봉표에는 없었던 인간관계나 업무 방식이 만족도를 크게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비교하는 순간의 나와 실제로 경험하는 순간의 나는 같은 기준으로 대상을 평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별 편향이 제게 흥미로웠던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아이의 수학 공부를 생각하면서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가장 달라진 것은 선행학습에 대한 찬반이 아닙니다.
지금도 아이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선행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진 것은 제가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앞서 있는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서 더 빠른 선행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도 서둘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부 과정을 지켜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진도가 앞서 있다고 해서 그만큼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었고, 한 번 배웠다고 해서 모두 자기 것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배운 개념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틀린 문제를 들여다보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구별 편향을 공부하면서 저는 그때의 제 마음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의 진도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는 금방 보입니다.
몇 개월, 한 학기, 한 학년이라는 숫자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이가 하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렇게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진도는 눈에 보였지만 이해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아이의 공부를 판단하기가 더 쉬웠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바꾸어야 했던 것은 아이의 진도가 아니라 아이의 공부를 바라보는 제 기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빠르게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는 것만큼 현재 배우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교육뿐 아니라 제가 무언가를 비교하고 선택할 때도 이 경험을 떠올려보려고 합니다.
눈에 잘 보이는 숫자와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차이에 마음이 끌릴 때 한 번쯤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비교하기 쉬운 것일까?
참고자료
Hsee, C. K., & Zhang, J. (2004).
Distinction Bias: Misprediction and Mischoice Due to Joint Evalu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6(5), 680–695.
여러 대안을 함께 비교하는 공동 평가와 하나의 대상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단독 평가에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며, 비교 과정에서 발견한 차이가 실제 경험의 만족에 미칠 영향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는 구별 편향을 다룬 연구입니다.
Hsee, C. K. (1998).
Less Is Better: When Low-Value Options Are Valued More Highly than High-Value Options.
Journal of Behavioral Decision Making, 11(2), 107–121.
대상을 따로 평가할 때와 나란히 비교할 때 가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어떤 속성이 얼마나 쉽게 평가될 수 있는지가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다룬 연구입니다.
Davidson, I. J., et al. (2021).
Misprediction of affective outcomes due to different evaluation modes: Replication and extension of two distinction bias experiments by Hsee and Zhang (2004).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92, 104052.
구별 편향에 관한 기존 실험을 재현하고 확장한 연구입니다. 일부 결과는 기존 연구와 일치했지만 모든 효과가 동일하게 재현된 것은 아니므로, 구별 편향을 모든 선택 상황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