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를 보는 시간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생각으로만 끝낸 것도 아닙니다.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한두 권씩 빌려왔습니다. 그런데 책을 집에 가져오는 데까지는 성공하면서도 정작 읽지 못한 채 반납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책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왜 실제 독서로는 잘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이 경험을 의도-행동 격차와 실행 의도라는 심리학 개념을 통해 다시 살펴봤습니다.

1.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까지 갔는데 읽지는 않았습니다
OTT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에 책을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도서관에 갔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찾아보고 그중 한두 권을 골라 빌려왔습니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서관까지 갔으니 이번에는 정말 읽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집에 가져온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어도 생각만큼 자주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 읽어야겠다고 미루기도 했고, 다른 일을 하다가 결국 OTT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반납일이 다가왔습니다.
결국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을 그대로 반납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설명은 의지였습니다.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했습니다. 정말 책을 읽을 마음이 없었다면 굳이 시간을 내서 도서관까지 가고 책을 골라 빌려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책을 읽겠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과 실제로 책을 읽었다는 결과 사이에는 무언가 빠져 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바로 이 지점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습니다.
2. 좋은 의도가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실행하지 못하면 쉽게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운동하지 못하면 운동할 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공부하지 못하면 공부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의도와 실제 행동을 구분합니다.
Sheeran과 Webb는 2016년 의도와 행동의 관계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종합하면서 사람들이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항상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를 의도-행동 격차(Intention-Behavior Gap)라고 합니다.
이 관점에서 제 독서 경험을 다시 바라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가 하나 보였습니다.
저는 책을 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서관에 갔습니다.
책을 골랐습니다.
책을 빌려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여기까지 여러 행동을 했기 때문에 저는 독서라는 목표를 상당히 실행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분리해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
‘실제로 책을 펼쳐 읽는 것’
세 가지 모두 독서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같은 행동은 아닙니다.
저는 앞의 두 단계에는 비교적 쉽게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목표의 핵심인 세 번째 단계에서는 자주 멈췄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 성공한 것과 독서라는 목표를 실행하는 데 성공한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니 질문도 달라졌습니다.
왜 나는 의지가 부족할까 가 아니라, 책을 읽겠다는 의도가 실제 독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3. 제 계획에는 ‘책을 읽겠다’는 목표만 있었습니다
이 질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개념이 심리학자 Peter Gollwitzer가 연구한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입니다.
Gollwitzer는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도와 그 목표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구분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자주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소파에 앉으면 20분 동안 책을 읽겠다.’
라는 계획은 비슷해 보이지만 구조가 다릅니다.
첫 번째에는 원하는 결과가 있습니다.
두 번째에는 행동을 시작할 상황과 그 상황에서 할 행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행 의도는 흔히 ‘만약 X라는 상황이 되면 Y라는 행동을 하겠다’는 if-then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계획을 자세하게 적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마주칠 특정한 상황과 목표 행동을 미리 연결해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개념을 알고 나서 제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저는 어떤 책을 읽을지는 정했습니다.
그런데 언제 읽을지는 거의 정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빌려오면서는 분명히 ‘이번에는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이 제 하루의 어느 시간에 들어갈지는 정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오늘 여유가 있으면 읽어야지.
OTT 대신 책을 읽어야지.
모두 계획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행동을 시작할 순간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이미 익숙한 행동들은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작됩니다. 쉬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하고 OTT를 보기도 합니다.
결국 독서를 시작할 때마다 다시 선택해야 했습니다.
지금 책을 읽을 것인가, 다른 것을 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제게 없었던 것은 책이 아니라 어쩌면 책을 펼칠 구체적인 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4. 실제 독서 행동을 연구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실행 의도를 실제 독서 행동에 적용한 국내 연구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20년 김이영의 「독서목표 실행의도가 독서목표 성취에 미치는 효과: 평소 독서 선호도와의 상호작용」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 145명을 대상으로 실행 의도가 독서목표 성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습니다.
연구에서는 학생들을 실행 의도를 형성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무선 할당하고 2주 동안 독서량과 독서에 대한 재미 지각을 측정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나는 독서를 할 것이다’라고 목표를 정하는 것과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독서를 하겠다고 연결해두는 것은 다르게 설정됐습니다.
연구 결과 실행 의도를 형성한 집단에서 독서량과 독서 재미 지각의 주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평소 독서 선호도가 낮았던 학생들은 실행 의도를 형성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독서량과 독서 재미 지각이 높아지는 상호작용도 관찰됐습니다.
물론 이 결과를 제 경험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됩니다.
연구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었고 연구 기간도 2주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성인의 일상이나 OTT와 독서 사이의 선택을 직접 연구한 실험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독서에서도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갖는 것과 실제 독서가 시작될 상황을 구체화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겠다는 목표는 여러 번 세웠습니다.
심지어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도서관까지 찾아가 책도 빌렸습니다.
그런데 실제 독서를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대부분 그날의 상황에 맡겨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가 반복했던 행동을 단순히 의지 부족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싶을 때마다 먼저 책을 준비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한두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독서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도-행동 격차와 실행 의도를 알아보면서 책을 읽겠다는 마음, 책을 준비하는 행동, 실제로 책을 펼쳐 읽는 행동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책을 빌리는 것은 독서를 위한 준비일 수 있지만 독서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부족했던 것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겠다는 마음을 실제 하루의 어디에 놓을 것인지 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실행 의도를 세운다고 모든 계획이 행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피곤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습관이나 환경, 시간, 동기처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의도-행동 격차를 알게 된 뒤에도 ‘책을 읽지 못한 이유를 찾았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신 질문 하나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읽지 못한 책을 반납하면서
‘왜 나는 이번에도 책을 읽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책을 읽기로만 했을까, 아니면 언제 책을 펼칠지까지 정했을까.’
좋은 의도는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발하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다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다면 몇 권을 빌릴 것인가보다 먼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이 책을 내 하루의 어느 순간에 펼칠 것인가.
어쩌면 제가 반복해서 반납했던 것은 읽지 않은 책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겠다는 마음은 여러 번 빌려왔지만, 그 마음이 실제 행동이 될 시간까지 함께 가져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Sheeran, P., & Webb, T. L. (2016). The Intention–Behavior Gap.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10(9), 503–518.
Gollwitzer, P. M. (1999). Implementation Intentions: Strong Effects of Simple Plans. American Psychologist, 54(7), 493–503.
김이영 (2020). 「독서목표 실행의도가 독서목표 성취에 미치는 효과: 평소 독서 선호도와의 상호작용」. 사회과학연구, 31(1), 19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