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갑자기 회사에서 확인하지 못한 일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내일 출근해서 확인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모습을 단순히 제가 예민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된 과제와 기억의 관계를 다룬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를 알게 되면서 다른 질문을 갖게 됐습니다. 일은 회사에 두고 왔는데, 왜 끝내지 못한 일은 머릿속까지 따라오는 걸까요?

1. 내일 확인하면 되는데 생각은 오늘에 남았습니다
저는 회사 일을 하다가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퇴근 후에도 그 일이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집에 온 뒤 불쑥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 그거 제대로 확인했나?’
그 순간부터 마음 한쪽이 조금 불편해집니다.
그렇다고 다시 회사로 갈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다음 날 출근해서 확인하면 됩니다. 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에도 생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또 떠오르고, 잠시 잊었다가도 다시 생각납니다. 그때마다 ‘내일 확인하면 되지’라고 스스로 답합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셈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것을 제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좀 예민해서 그런가?’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내일 처리하겠다고 생각했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왜 머릿속에서는 그 업무가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다 알게 된 개념이 자이가르닉 효과였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이름은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의 연구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이가르닉은 1920년대에 완료된 과제와 중간에 중단된 과제가 기억에 어떻게 남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초기 실험에서는 중단된 과제가 완료된 과제보다 더 잘 기억되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흔히 자이가르닉 효과를 ‘끝내지 못한 일은 더 잘 기억한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 한 문장만으로 제가 퇴근 후 경험한 일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단순히 왜 기억하는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미 내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 생각이 자꾸 현재로 돌아오는가.
저에게는 그 부분이 더 궁금했습니다.
2. 자이가르닉 효과는 ‘미완성은 무조건 기억에 남는다’는 공식이 아닙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흥미로운 개념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상당히 단순하게 소개되기도 합니다.
‘미완성된 일은 완료된 일보다 기억에 잘 남는다.’
이 설명만 보면 마치 모든 미완성 과제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오래 남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 심리학 연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이가르닉의 초기 연구 이후 여러 연구자가 중단된 과제와 기억의 관계를 다시 연구했고, 언제나 동일한 크기의 효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제에 대한 동기와 관여 정도, 중단되는 방식, 과제를 다시 시작할 가능성 등 여러 조건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퇴근 후 회사 일이 생각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이가르닉 효과가 나타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회사 일을 떠올리는 모든 이유가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있을 것이고, 걱정이 많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일의 중요성이나 당시의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제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완료되지 않은 목표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아직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점 때문입니다.
완료한 일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떤 업무를 완전히 마치면 그 일은 과거가 됩니다.
하지만 ‘내일 확인해야 하는 일’은 다릅니다.
오늘 시작됐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달력으로 보면 오늘의 업무는 끝났지만 목표의 관점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퇴근 후 떠오르던 회사 일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나온 것과 그 업무가 제 머릿속에서 완료된 것은 별개의 일이었습니다.
몸의 퇴근 시간과 생각의 퇴근 시간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3. 흥미로운 것은 ‘완료’가 아니라 ‘계획’이었습니다
자이가르닉의 초기 연구보다 제 경험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해 생각해 볼 만했던 것은 E. J. Masicampo와 Roy Baumeister가 2011년에 발표한 연구였습니다.
연구진은 아직 달성되지 않은 목표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사람의 생각과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연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미완성 목표와 관련된 생각이 다른 과제를 하는 중에도 떠오를 수 있고, 이러한 인지적 간섭이 현재 하고 있는 과제의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눈에 들어온 결과가 있었습니다.
미완성된 목표를 실제로 끝내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언제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그 목표와 관련된 인지적 영향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저에게는 이 부분이 자이가르닉 효과 자체보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을 끝내야만 머릿속에서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이 끝난 것과 그 일을 처리할 방법이 정해진 것은 서로 다른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 확인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일 출근하면 먼저 이 부분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다음 단계로 이렇게 처리해야겠다.’
라고 정해놓는 것은 다릅니다.
둘 다 업무 자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자는 다음 행동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계속 그 일을 붙잡고 있어야 할 필요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제가 퇴근 후 반복했던 생각을 다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동안 저는 생각이 계속 나는 것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만 생각하자.’
‘내일 하면 된다.’
하지만 어쩌면 필요한 것은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생각이 다시 나타났을 때 어디에서 이어갈지를 정해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일을 완료한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다음 순서’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4. 직장인의 하루에는 미완성된 일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직장생활과 연결해 생각하면서 한 가지를 새롭게 보게 됐습니다.
직장에서는 하루의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끝내고 퇴근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의 답변을 기다리는 일이 있고, 다음 날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시작했지만 며칠 동안 이어지는 업무도 있고, 내가 할 일을 끝냈더라도 다른 과정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인의 하루에는 자연스럽게 ‘미완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퇴근을 잘한다는 것이 모든 일을 끝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끝나지 않은 일을 어떤 상태로 내일에게 넘겨주느냐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거 아직 안 끝났는데.’
라고 남겨두는 것과
‘여기까지 했고 내일은 이것부터 확인한다.’
라고 남겨두는 것은 같은 미완성 업무라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가깝고, 후자는 다음 행동이 정해진 과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일을 끝내야 마음 편하게 퇴근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을 내일 어디서 다시 시작할 것인지 분명하게 해두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업무 스트레스가 크거나 중요한 문제가 걸려 있다면 계획을 세워놓아도 계속 생각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향과 업무 환경 역시 영향을 줄 것입니다.
다만 저는 퇴근 후 회사 일이 떠오를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일 가서 무엇부터 확인하면 될까?’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그날 밤 계속 생각하는 것보다, 다음 날 해야 할 일이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퇴근 후 회사 일이 떠오르는 경험을 자이가르닉 효과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과 미완성 목표에 관한 연구를 찾아보면서 제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 가지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일이 끝나야 생각도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일이 집에서 떠오르면 아직 일을 제대로 내려놓지 못한 제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업무는 매일 완결되지 않습니다.
오늘 끝낼 수 없는 일도 있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모든 미완성 업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업무가 머릿속에서 계속 나를 호출하지 않도록 다음 행동을 정해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을 집까지 가져오는 대신 다음 행동만 정해놓고 회사에 남겨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든 일을 끝내야만 퇴근할 수 있다면 제대로 퇴근할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어디까지 했는지, 내일 무엇부터 확인할지를 정해두는 것은 가능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이 끝났느냐만이 아니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일을 어디에 두고 왔느냐도 중요했습니다.
회사 책상 위에 남겨둔 일과 머릿속에 들고 온 일은 같은 미완성 업무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퇴근 후 회사 일이 문득 떠오르면 무조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보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만 정해보려고 합니다.
‘내일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놓는 것.
어쩌면 퇴근은 모든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일을 내일까지 안전하게 내려놓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자료
Zeigarnik, B. (1927).
Das Behalten erledigter und unerledigter Handlungen. Psychologische Forschung, 9, 1–85.
Masicampo, E. J., & Baumeister, R. F. (2011).
Consider It Done! Plan Making Can Eliminate the Cognitive Effects of Unfulfilled Go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1(4), 667–683.
Seifert, C. M., & Patalano, A. L. (1991).
Memory for Incomplete Tasks: A Re-examination of the Zeigarnik Effect. Proceedings of the Annual Meeting of the Cognitive Science Society, 13.